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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트리치오 수사 장엄서원식
The solemn vow ceremony of D.Patrizio was held at our association meeting on August 19, 2023. On the Solemnity of Saint Bernardo Tolomei, the Founder, the Abbey of St. Benedict of Olivetano It was celebrated with great grandeur at the Abbey of St. Bernard Tolomei). In the presence of D. Patrizio's parishioners, many lay monks, and consecrates of St. Olivetano's Benedictine Congregation, the vow mass was held by Abbot James. After the vow mass, there was a solemn vow ceremony in the monastery cafeteria. A lot of people came and blessed me, worked hard, and I sincerely thank everyone who prayed and helped.
- Monk's Great Feast 5.21
A big feast was held at Myeongdong Cathedral in Seoul yesterday, the Great Ascension Festival and a public relations week. It was a big feast of 34 congregations and missionaries, including Sister Salesio and Jesuits In the exhibition and the sanctuary counseling corner for the sale of goods, the steps of believers who finished the mass were popular. Reporter Lee Sim has been to the scene The yard of Myeongdong Cathedral is filled with the booths of monks. The believers gathered at the church during the Mass Tourists are delighted to participate in the event organized by the order. On the 21st, Lord's Ascension Festival and Public Relations Week, a big feast of the church was held around Myeongdong Cathedral. Busking is held on one side, and a talk concert is in full swing at the cultural center's Soseongdang. In the Virgin Mary's Garden, we also see children taking pictures together, delighted with the appearance of the Virgin Mary. There is also a place to pray for a moment on one side of the Mother of Our Lady of Eternal Help booth. The cathedral is crowded with performances and booths prepared by 34 monasteries. It is a time of joy for the couple who visited Myeongdong Cathedral with their son Seo Jin-gun. "I'm here to show the baby my first mass. But it's an honor to have so many good things today that you didn't know it was a big party. (Then you came here without knowing it was a big party?) While waiting for Mass, you showed me a lot of babies and prayed a lot..I haven't been able to come for a while..." The great feast of the congregation was a great pleasure for the monks, too. "I personally want to express the existence of a monk in a word. Monks are people who testify to God's kingdom. Beyond the short life of this world, we are reminded again that eternal life exists and that eternal life is in God." - Archbishop Chung Soon-taek's Mass Lecture- Under the theme of Good and Good, the big feast of the order lasted until 7 p.m. The big feast was held as a place of friendship and sharing to convey the joy of the celebration life
- Visit of Cardinal Andrea Yeom Sujeong
On May 15, 2023 (Monday), Cardinal Yeom Su-jeong (former Archbishop of Seoul) visited Olivetano St. Benedict Abbey in Goseong. The Cardinal had a prayer with the monks and had lunch in the refectory of the abbey with the monks and nuns of St. Benedict of Olivetano and the clergy and religious in retreat. After the lunch, he had a long conversation with the monks at the Café Olive (abbey cafe) and blessed each mo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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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사영 백서 | Olivetano
황사영 백서(黃嗣永帛書)는 조선 에서, 1801년 (순조 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 신자(信者) 황사영 이 중국 로마 가톨릭교회 북경 교구 의 주교 에게 혹독한 박해를 받는 조선교회의 전말보고와 그 대책을 흰 비단에 적은 밀서(密書) 황사영 의 백서 황사영이 1801년 2월부터 1801년 9월까지 은거하며 숨어서 백서를 작성했던 실제 토굴의 모습 <천주교 베론 성지 소재> 황사영 백서 토굴 1801년 2월 - 1801년 9월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황사영은 8개월 동안 배론 마을 옹기굴을 가장한 토굴 속에 머물며 중국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편지를 썼다. 이 편지의 소재는 명주천이고, 크기는 가로 62cm, 세로 40cm이며, 세필로 쓴 글자 수는 122행, 13,384자다. 이 백서는 첫째, 인사말(1-5행), 둘째, 신유박해의 진행과정(6-32행), 셋째, 순교자 열전(32-90행), 넷째, 교회 재건과 신앙 자유를 얻기 위한 5가지 방안(90-118행), 다섯째, 관면요청과 맺음말(119-122행)로 되어 있다. 백서가 중국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편지 심부름을 맡았던 황심 토마스가 그 해 9월 15일 배론에서 체포되었고 (10월 24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어 순교) 황사영은 황심이 체포된 후 9월 29일 배론에서 체포되어 1801년 11월 5일 서울 서소문 밖에서 대역부도의 죄로 능지처사 되었다. 6일 황사영의 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로, 아내 정난주(정명련)는 제주도로, 두 살 된 아들 황경한은 추자도로 귀양을 갔다. 현재 백서의 원본은 로마 교황청 바티칸 민속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황사영 백서 실제 원본크기 <천주교 베론 성지> Our Story Read More 황사영은 누구인가 서울의 아현동에서 남인 시파에 속하던 양반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에게 1790년은 ‘운명의 해’였다. 16세에 진사시에 합격한 것이다. 당시의 국왕인 정조는 그를 특별히 불러 격려하면서 나이 20세가 되면 탁용해 주겠다고 말했다. 당시 정세에서 이는 그에게 출세와 부귀영화를 확실히 보증해 주는 일이었다. 또한 그는 이 해에 정명련과 결혼하여 정약용의 조카사위가 되었다. 결혼은 흔히 인생의 전환점이라 한다. 그는 결혼을 통해서 그 삶에서 진정한 전환을 겪게 되었다. 그의 처가 인척들을 통해서 천주교 신앙에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처가 식구들을 비롯해서 천주교와 관련된 여러 인척들을 갖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승훈과는 사돈간이었고, 처삼촌인 정약종은 초창기의 교회를 이끌던 인물이었다. 황사영은 결혼 직후인 1790년에 교리를 배워 영세 입교했다. 이후 그는 관직의 길을 포기하고 오직 교리 연구에만 매달렸다. 그는 “구원의 학문이 아닌 다른 학문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로써 그는 부귀영화의 길을 스스로 버렸고, 학동들을 모아 가르치며 몇 푼 안되던 학전(學錢)에 기대어 사는 가난에 찌들린 훈장의 길을 택했다. 왜 작성되었나 황 알렉시오로 다시 태어난 그는 천주교 신앙이 성리학과는 달리 조선을 구원해 줄 새로운 사상임을 확인했고, 이를 전파하려고 자신의 삶을 바쳤다. 그리하여 그는 당시 교회의 지도적 인물로 성장해 갔다. 그러나 정조 임금이 궂기신 뒤 일어난 천주교 박해는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1801년에 박해가 일어났다.이 박해 과정에서 그가 그처럼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신앙은 모독을 당했다. 자신의 동료들은 하나씩 잡혀서 감옥에서 매맞아 죽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그가 존경하던 중국인 신부 주문모는 신자들에게 무고한 고통을 주지 않으려고 관청에 스스로 자수하여 죽음의 길을 택했다. 이렇게 조선교회를 이끌던 이들이 삽시간에 죽음을 당했다. 이 박해를 증언하고 조선교회를 지키고 재건해야 할 책임은 오로지 황사영에게 남겨졌다.황사영은 신자들이 마을을 이루어 옹기를 구우며 살아가던 제천 땅 배론으로 망명을 단행했다. 그리고 토굴에 숨어서 박해에서 희생된 증거자들의 순교사실을 기록했다. 또한 그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조선교회의 지도자로서 교회의 재건책을 구상했다.그는 길이가 세 뼘, 폭이 두 뼘 정도 되는 비단폭을 구했다. 그리고 궁벽한 옹기점의 점인들에게서 구하기는 힘들었을 매우 가는 붓으로 먹을 찍어 깨알같은 글씨를 또박또박 써내려 갔다. 아마도 그가 이상인(李喪人)이라 자처하며 피신할 때에도, 당시 선비들이 가지고 다니던 휴대용 필통에 그 붓을 넣어 가지고 다녔던 듯하다. 황사영이 작성한 일종의 박해보고서요 청원서인 이 편지는 이렇게 작성되었다.황 알렉시오는 이 편지를 조선교회를 책임지던 북경 주교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이 일을 중국교회에 밀사로 파견된 바 있던 황심에게 맡기고자, 그를 배론으로 오게 했다. 그러나 황심은 도중에 체포되었고, 그의 발설로 황사영의 피신처가 탄로났다. 의금부의 나장들은 득달같이 내달아 그를 체포했다. 그가 작성해 놓은 백서도 압수되었다. 백서(帛書)는 ‘비단에 쓴 글’이다. 한자문화권에서 고대사회로부터 쓰이던 보통명사였던 이 백서라는 단어 앞에 우리는 글쓴이 황사영의 이름을 붙여 특별히 다른 백서와 구별하여 부르고 있다. 이 황사영 백서가 로마 교황청 고문서고를 떠나 서울의 절두산 순교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이 백서는 1801년 황사영(알렉시오, 1775-1801년)이 그 박해 과정을 기록하고 교회 재건책을 논한 초기교회사 연구의 주요 자료다. 어떻게 전해졌나 남은 말 백서는 분명 먹으로 작성되었다. 해서체의 글씨로 쓰인 이 원본을 주의 깊게 보면 물기 때문에 글씨가 조금씩 번진 곳을 확인하게 된다. 그 잔잔한 번짐은 백서의 보관과정에서 생긴 흔적일 수도 있다. 또한 백서를 작성하며 황사영의 땀방울과 눈물이 적셔져서 일어난 현상일 수도 있다. 오히려 그의 땀이며 눈물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황사영은 간절한 눈물을 흘리며 백서를 작성했나 보다. 나는 물기에 얼룩진 그 백서의 진본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전하고자 했던 그 진실은 오늘의 우리를 전율시킨다. [출처 : 조광 이냐시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경향잡지, 2001년 9월호] 신유박해의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1775-1801년) 단락 텍스트입니다. 텍스트를 추가 및 편집하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체포되고 백서 내용이 밝혀지자 조정이 경악했다. 백서에는 군함 수백 척과 정예군사 5-6만 명을 보내 조선에 무력으로 개교를 시도해 달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서에서 박해의 경과를 보고한 부분보다는 오직 이 부분만이 강조되어 회자되었다. 조정에서는 이를 ‘흉서’로 규정했다. 일반 관리나 지방의 선비들은 이 반역적 내용에 격분했고, 황사영은 대역죄인으로 죽음을 당했다. 황사영 백서 한글번역본 원문보기 한글번역문보기 클릭
- Saint Bernard Tolomei | Olivetano
St Bernardo Tolomei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1272 ~1348 이탈리아, 시에나) St. Bernardo Tolomei The founder of St. Benedictine of Olivetano is St. Bernardo Tolomei. Born in 1272 to a noble family in Siena, Italy, the saint was originally John. Johann Tolomei was a law enforcement officer and emperor's knight who studied law like any other aristocratic son at that time. But suddenly, he is in danger of losing his sight, and he personally pledges to devote his life to the healing of the Blessed Virgin Mary. Upon being healed by God's grace, he decided to live the life of thorough retribution and prayer he had hoped for, and began a silver life in 1313 with his colleagues Ambrosio Piccolomini and Patricio Patrici. I was 41 years old at that time. "All the teachings of adults It is an echo that speaks of the value of humility, By every means possible Teaches humility and leads us to humility I convince you to come back." St. Bernardo Tolomei, Letter 1 "More than any heroic virtue Humble your own sins It 's better to admit it." St. Bernardo Tolomei, Letter 1 Like the early monks, the three devoted themselves to contemplative life with silence and simple life. Later, as their holy life became known and his disciples gathered, he built a monastery at Monte Olivetto, which was accredited by the Bishop of Arezzo as a convent in 1319. The Order, which chose Saint Benedician's Capital Rule as a way of life, was finally officially approved by the Church in 1344 by Pope Clemens VI. Tolomei served as fathers for 27 years, earning the full trust of the brothers of the Order. However, as the plague spreads across Siena, he moves to a devastated city center to reach out to help. In doing so, while caring for the brothers who suffered from plague, he himself died in 1348 with plague. In 1644 Pope Urban VIII placed him on a blessed tribute, and investigations for canonization began in 1998, and relatively recently, canonized by Pope Benedict XVI in 2009. 복자 암브로시오 삐콜로미니 이탈리아 시에나 ( ? ~1338) Blessed Ambrosio Picolomini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의 동료이자 수도회 창설자 3인중 한명으로서 1313년부터 똘로메이 성인과 함께 이탈리아 토스카나지방의 시에나 인근의 아꼬나라는 광야에서 은수 생활을 같이 시작하였다. 복자 암브로시오는 13세기에 세력을 떨쳤던 회사 '삐꼴로미니 가문 출신이며, 그의 가문에서 비오2세와 비오3세의 두 교황이 배출되었다., 그는 몬떼 올리베또 수도원의 제2대 아빠스 직을 수행하였고, 주님을 섬기고 공동체 형제들의 영적 유익을 위해 헌신하였다. 사료에 따르면 그가 임종하기 전에 "선하고 믿음직한 종이여, 네 주님의 기쁨 안으로 들어가라" 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두 동료들보다 먼저 하느님께 돌아갔으며(+1338년) 수도원 성당안에 묻혔다. 복자 빠뜨리시오 빠뜨리찌오 이탈리아 시에나 ( ? ~1347) Blessed Patrizio Patrizi 빠뜨리찌오의 아버지는 시에나 공국의 최고위직에 있었다. 빠뜨리찌오는 인생의 대전환이 있기 전에 몇 년간 사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속적인 삶은 그에게 지루하고 의미가 없었다. 시에나 명문 귀족 가문의 지혜로운 품행으로 존경을 받았던 그는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암브로시오 삐꼴로미니와 함께 평신도 신심단체의 일원이 되어 하느님안에서 우정을 쌓아갔다. 결국 그는 물질적 탐욕과 인간적인 허영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곧바로 그것을 실행하였다. 그가 몬떼 올리베또 수도원의 초대 아빠스(1319-1320)직을 수행할 때 공동체가 제 모양을 갖추기 시작하였고, 수도자들은 두려움 없이 누구나 순종의 길에 열려 있었다. 베네딕도 규칙 아래, 그들은 영적으로 성장해가며 일치를 이루었고 외적으로는 수련자들의 수가 많이 늘어났다. 그리고 이 때 수도원과 성당을 새로 짓기 시작해서 그의 아빠스 임기가 끝나기 전에 성당이 마무리 되었다. 1347년, 빠뜨리찌오는 페스트가 이탈리아 전역을 휩쓸기 직전에 세상을 떠나 성당안에 묻혔다. 베네딕도회 몬떼올리베또의 성 마리아 연합회 창설자 3인 ( 왼쪽부터 복자 빠뜨리찌오 빠뜨리찌,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복자 암브로시오 피콜로미니- 몬떼올리베또 대수원 소장 )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일 소도마, 1505, 몬떼 올리베또 소장 2009년 시성식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대광장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이콘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성인께서 은수하셨던 동굴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페스트 환자를 돕는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폼페오 바토니, 1745 베르나르도에게 성 베네딕도 발현하심 파브리지오 카롤라리 작, 1773, 몬떼 올리베또 소장 십자가 아래의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몬떼 올리베또 내 십자가 경당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상 몬떼 올리베또 소장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동상 시에나 크리스토포로 성당 소재
- 자료실 | Olivetano
수도원 자료실
Forum Posts (18)
- 2020년 성탄 밤 미사In 수도원 소식·2020년 12월 26일2020년 12월 24일 오후9시에 유덕현 아빠스님의 주례로 성탄 밤 미사가 거행되었습니다. 이번 성탄 밤 미사는 코로나 19방역 2.5단계 상승으로 인해 외부 인원이 일체 참석하지 못하고 공동체 수사님들과 수녀님들만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습니다. 아빠스께서는 비천한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오신 구세주 예수님의 겸손에 대하여 강론하셨습니다. 미사 후 수사님들은 카페에서 조촐한 다과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탄 구유는 수련소 형제들과 파코미오 수사님의 각고의 노력으로 멋지게 꾸며졌습니다.10170
- 2019년 성모의 밤In 수도원 소식·2019년 8월 22일0069
- 파코미오 수사 장엄서원식In 수도원 소식·2021년 12월 27일파코미오 수사의 장엄서원식이 지난 8월 19일 저희 연합회의 창설자이신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성인 대축일에 거행되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분들이 참석하지 못하고 파코미오 수사님의 가족분들만 참석하신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비가온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날씨도 화창했고, 모든 것이 은총속에 기쁘게 진행되고 기쁘게 마쳤습니다.00113







